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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주 파파입니다.
오늘은 정월 대보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정월 대보름
정월 대보름은 정월(1월)의 보름날을 가리키는 말로, 음력 1월 15일에 해당하는 한국의 전통 명절입니다. 설날 이후 처음 맞는 보름날로 '상원', 혹은 '오기일(烏忌日)'이라고도 합니다.
흔히 달맞이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나, 전통적으로는 설날보다 더 성대하게 지내기도 했던 명절이었습니다. 대보름 전날인 음력 14일부터 행하는 여러가지 풍속들이 있습니다.
원래는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15일 동안 축제일이었으며, 이 시기에는 빚 독촉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옛날에는 큰 축제였습니다.
이보다 좀 더 옛날에는 정월 대보름 이튿날을 실질적인 한 해의 시작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하는 설도 있습니다.
이 날에는 부럼, 오곡밥, 약밥, 귀밝이술, 김과 취나물 같은 묵은 나물 및 제철 생선 등을 먹으며 한 해의 건강과 소원을 빕니다. 고싸움, 석전과 같은 행사와 다양한 놀이를 하였는데, 이 풍속들은 오늘날에도 일부 이어져 행해지고 있습니다. 지역별, 마을별로 제사를 지내는 곳도 있습니다. 예로부터 정월 대보름에는 한 해의 계획을 세웠는데, 이 과정에서 한 해의 운수를 점치기도 하였습니다.
정월 대보름의 기원과 관련된 전설 중에 사금갑(射琴匣)이 있다. 원전은 《삼국유사》 기이 제1편 소지왕 이야기다.
신라 시대, 소지 마립간이 정월 대보름에 천천정으로 행차하기 위해 궁을 나섰는데 갑자기 까마귀와 쥐가 시끄럽게 울었다. 그리고는 쥐가 사람의 말로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옵소서."
그러자 임금은 신하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게 했다. 신하가 까마귀를 어느 정도 따라가다가 어느 연못에 다다랐을 때, 돼지 두 마리가 싸움을 하고 있었다. 신하는 돼지 싸움을 보다가 그만 까마귀를 놓쳐 버렸다. 잠시 후에 연못에서 노인이 나와서 신하에게 편지 봉투를 주고는 "그 봉투 안의 글을 읽으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읽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입니다."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신하는 궁에 돌아와 임금에게 편지 봉투를 주면서 연못의 노인이 한 말을 전했다.
임금은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단 한 사람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 편지를 읽지 않으려 했는데 옆에 있던 일관이 말하였다.
"전하, 두 사람이라 함은 보통 사람을 말하고, 한 사람이라 함은 전하를 말하는 것이니, 편지의 글을 읽으시옵소서."
일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임금은 편지를 꺼내서 읽어 보았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거문고 갑을 쏘시오(射琴匣)
임금은 곧 거문고 갑을 활로 쏜 다음 열어 보니 두 사람이 활에 맞아 숨져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왕비와 어떤 중이었는데, 중이 왕비와 한통속이 되어 임금을 해치려 했던 것이다. 그 뒤 정월 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이라 해서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이후 이 찰밥이 발전해 약밥이 되었다.
까마귀뿐 아니라 쥐와 돼지도 활약을 했는데도 까마귀만 챙겨주는 것이 의아할 수 있는데, 이는 쥐와 돼지는 이미 12지신에서 한 자리씩 (심지어 첫 자리와 끝 자리) 차지하고 있는 관계로 이런 일이 아니라도 따로 쥐와 돼지를 기리는 행사가 많은데, 까마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럼
부럼의 정확한 유래는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조선 후기에 나온 여러 세시기류나 죽지사류 기록에 그 사례가 확인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오랜 기간 동안 광범위하게 전승되어온 민속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해동죽지(海東竹枝)』의 기록에 의하면 “옛 풍속에 정월 대보름날 호두와 잣을 깨물어 부스럼이나 종기를 예방하였다. 궁중에서는 임금의 외척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일반 시정에서는 밤에 불을 켜 놓고서 그것을 팔았는데 집집마다 사 가느라 크게 유행하였다.”고 하여 전래적으로 부럼깨기가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는 물론 궁중에서까지도 성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럼깨기는 부스럼을 깨물어 그것을 예방한다는 목적으로 행해지기 전에, 본디 이를 튼튼하게 한다는 주술적 목적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동국세시기』에는 “의주(義州) 풍속에 젊은 남녀들이 새벽에 엿을 깨무는 것을 치교(齒交)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여기에서 치교는 ‘이 내기’로써 누구 이가 튼튼한지를 겨룬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겨루기는 일반적으로 대보름날 고기산적[肉炙]을 만들어 먹는 것을 ‘이 굳히기 산적[固齒炙]’이라고 부르는 것과도 유사한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담정유고』에 보이는 “호두와 밤이 어금니를 단단하게 하니, 오이처럼 부드럽게 부스럼을 깨무네.”라는 시구도 이런 관념이 오래 전부터 널리 인정되어 왔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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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나무위키 & [네이버 지식백과] 부럼깨기 (한국세시풍속사전)